디미고, 3년을 돌아보며 - 디미고 입학과 새내기 시절
제가 디미고 입학을 꿈꾸게 된건 중학교 3학년 중반쯤이었습니다.
여러 게임들을 하며 컴퓨터와 친숙해진 저는, 어느샌가 프로그래밍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고 처음 샀던 C언어 책을 바탕으로 알고리즘 문제들을 풀며 제 적성을 발견했습니다.
논리적인 과정 속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프로그램이 복잡한 문제들을 빠르게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며 프로그래밍에 대해 더욱 배우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며 좋은 대학교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며 진학할 학교를 찾아본 결과, 디미고가 가장 적합한 선택지였기에 전 디미고 입학이 가장 큰 꿈으로 다가왔었습니다.
물론 저희 중학교 선생님들과 주변 친척들은 디미고가 어떤 학교인지 정확히 몰랐기에, 제가 특성화고인 디미고에 입학한다고 하니 모두가 저를 말렸습니다.
당시 제 성적은 디미고 일반전형 150점 기준 대략 138점정도 되었고,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 성적이었던 제가 특성화고에 간다고 하니 다들 말리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프로그래밍과 국영수 공부를 동시에, 거의 반반 비율로 하고 싶다는 제 생각을 실현시키기 가장 좋은 곳이 디미고였기에, 전 그냥 디미고에 제 3년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또, 저희 어머니께서도 그런 저를 응원해주시며 주변 친척들을 설득하기도 해주셨구요.
하지만, 뒤늦게 디미고 진학을 희망했기에 상장이나 회장, 독서같은 생기부 점수에서 조금씩 점수가 까였기 때문에 성적이 충분히 안정권이었음에도 많이 긴장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전형으로 지원하기엔 프로그래밍 공부가 조금 늦은 감도 있었구요.
하지만 그 생각은 기우에 가까웠고, (사실 생기부 점수가 만점인 학생은 극소수니까요..) 1차에 가볍게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면접은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사실 저도 면접에 대해, 누군가가 질문이 뭔지라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죽어라 인터넷에서 검색하긴 했었지만, 면접이 끝나고 나니 "굳이..?" 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물어보던 IT 관련 지식도 컴퓨터 앞에서 살아왔던 저에게는 그냥 아주 간단한 정도였고, 다른 생기부 관련 질문들도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면접 때 떨리는 것도 대기실에 앉아있을 때와 면접실 앞에서 잠시 대기할 때 엄청 떨렸다가, 면접실에 들어가니 갑자기 긴장이 풀리더라구요. 그만큼 선생님들도 친절하게 대해주시기도 했구요.
사실 중학교 시절 생기부에 쓰여있던 말들이 워낙에 완벽했던 점도 선생님들께서 잘 봐주신 것 같습니다. (중학교때 선생님들이 절 좋아하시더라구요...?)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합격 발표날, 떨리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합격 발표시간까지 핸드폰만 보며 누워있었고...
... 그대로 잠에 들어버렸습니다.
네, 정말 말도 안되게, 그 상태로 합격발표 시간 넘어서까지 꿀잠을 잤었습니다.
그렇게 비몽사몽한 상태로 거실에 나가니 어머니께서 먼저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뭐... 어떻게 보면 스포일러 당한 셈이죠.
전 막 합격한 순간 좋아서 엄마한테 뛰쳐 나가고... 뭐 이런걸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합격하니까 기분이 오묘하더라구요? ㅋㅋㅋ
그렇게, 전 디미고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꿈에 그리던 바로 그 디미고에 말이죠.
디미고에서의 1학년은 제가 생각한 것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다들 전교권에서 놀던 친구들이었고, 그런 만큼 학기 초의 학구열은 장난아니게 뜨거웠습니다.
아, 제 예상과 조금 달랐던 점이 있다면, 프로그래밍을 그렇게 잘 하는 친구가 많지는 않았던 점 정도겠네요.
그 당시 저는 C언어 포인터까지 배우고 디미고에 입학했었는데, 저만큼 알고있는 친구가 사실 상 거의 없던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당시 프로그래밍 시간에 미리 과제를 다 끝내고 친구들을 도와주러 돌아다녔던 기억도 나네요... ㅎㅎ
디미고에서의 기숙사 생활은 생각보다 답답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알고 오긴 했지만, 6인 1실에 취침 시간 6시간 30분은 원체 잠이 많았던 저에겐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너무 싫었던) 야외 점호가 끝나고 나면, 빨리 기숙사 호실로 올라가서 아침식사 시간 바로 전까지 눈을 더 붙이기도 했었죠. (전문용어로 "리잠" 이라고 합니다 ㅋㅋ)
또, 점호 면제가 되는 날에는 기상벨을 듣고도 그냥 무시하고 계속 자던게 얼마나 꿀만 같던지...
아마 제 디미고에서의 행복한 기억 Top 50부터 대충 Top 200까지는 전부 꿀같은 리잠을 자던 기억이 아닐까 싶을 정도니까요 ㅋㅋ
그래도 다행인 점은, 취침시간을 빼고는 기숙사에서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잘 살았습니다.
사실 기숙사에서 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성격이 아니라 방에 콕 쳐박혀서 핸드폰만 하는 성격이었기에, 기숙사 규칙을 어기는 일이 있을 수가 없었죠.
물론 가끔 친구들 보러 다른 방에 들어갔다가 걸린 적도 조금은 있었지만, 그렇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다니진 않았기에 사감 선생님들도 그냥 그러려니 해 주시더라구요.
아, 그리고 기숙사 이야기 하니까 말인데, 기숙사에 벌레가 좀 많습니다.
1학년 취침 시간에 핸드폰을 신발장 위 수납함에 올려놓고 자려고 불을 끄려던 중에, 갑자기 침대에서 누가 소리를 지르며 튀어 일어나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그리마가 그 친구 이불 위에 기어다니다가 침대 아래로 떨어지더라구요...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난 뒤, 결국 청소기로 그리마를 죄다 흡수(?)하고 난 뒤에야 잘 수 있었습니다.
기숙사뿐만 아니라 학교 내부에도 벌레가 많긴 했습니다.
봄~여름쯤 화장실에 들어가보면 좌변기에 그리마 한두마리가 들어가 있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리마는 많더군요
.처음 봤을땐 정말 혐오스러웠는데, 보다보니 귀엽기도 하고... 네, 사실상 체념한거죠.
애초에 아무리 벌레를 싫어해도 일주일에 한두마리씩 계속 보면 익숙해지는게 사람인지라... ㅋㅋㅋ
무슨 벌레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나 싶겠지만, 그만큼 저에겐 좀 강렬한 기억이었어서 말이죠... ㅎㅎ
그리고 1학년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인, 동아리 가입도 생각이 나네요.
당시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었던 저는 게임 제작 동아리 "게임즈"에 지원했고, 당시 입학 과제로 알고리즘 문제를 내던 동아리 "코인"과 이것저것 하던 동아리인 "선인장"에 지원했고, 게임즈와 선인장 동아리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원래는 게임즈가 1지망이었는데, 이상하게 뭔가 선인장에 더 마음이 가더군요.
지금 생각해 봐도 제가 어째서 그때 게임즈를 버리고 선인장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정말 의문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지금 돌아와 생각해서는 제 인생을, 적어도 3년과 대학교 선택까지 바꿔놓은 큰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동아리 선인장에 들어간 뒤, 저는 인공지능 분과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동아리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웹을 공부했고, 1학년중에는 저와 제 친구 단 둘만이 인공지능 분과를 지원하여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3학년 선배께서 저를 가르쳐 주셨는데, 처음부터 미분의 개념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일종의 문화충격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인 경사 하강법 및 다층 퍼셉트론을 직접 C++로 구현하는 선배를 보고 경외심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공부하다 보니 제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인공지능이 수행하는 굉장히 복잡한 의사결정과 절차들이 결국 수학 수식과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 인공지능에 대해 더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공지능 관련 공부를 더 하고싶다는 생각에 창업동아리*까지 들어가면서 인공지능을 더 배웠습니다.
인공지능 멘토 선배가 추천해준 해외 대학 강의인 CS231n을 들으며 인공지능에 대한 더 많은 지식들을 습득했고, 그것들을 풀어서 쓴 글이 제 블로그에 가장 처음 올라온 CS231n의 강의였습니다.
지금와서 돌아 생각해보니, 정말 정신없이,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열심히 인공지능을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하며, 제가 디미고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더군요.
일반고에 갔더라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루종일을 써가며 내가 직접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수정하며 개선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창업동아리: 일주일에 두번씩, 야자시간에 모여 동아리 활동을 함. 필자는 1학년 시절이었기에 창업활동에 관여는 안했고, 그냥 혼자 공부만 했었음.)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프로그래밍과 인공지능을 공부하면서 제가 놓쳐버린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내신 공부입니다.
사실 중학교때까지도 저는 내신을 아주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디미고에 들어오니 프로그래밍이 너무나도 재밌는 나머지 공부를 조금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프로그래밍과 공부를 거의 1:2 비율로 하고 있을 때, 저 혼자서 프로그래밍과 공부를 2:1 비율로 하고 있었을 정도니까요.
시험기간에도 머리를 식힌다는 핑계를 대며 알고리즘 문제들을 풀어댔었고, 주변 친구들도 저한테 시험공부 안하고 왜 코딩이나 하고 있냐고 소리 듣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1학년때의 시험은 잘 봤을리가 만무하고... 결국 제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평소에도 잘하던 수학은 2등급이라도 맞았지만, 국어와 과학이 6등급, 영어가 4등급으로 나왔으니...
국영수과가 4.5가 찍혀있는 것을 보고 정말 허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디미고에 들어와서 갑자기 떨어진 성적에 부모님께서 걱정하시기도 하셨지만, 그나마 모의고사 성적은 언제나 이과에서 10등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부모님께 "저는 대학교 정시로 갈거예요" 라고 말하며 내신에 손을 놔도 된다고 어필했었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을 정도인것 같습니다.
물론 최근에야 수시가 거의 없어지고 대부분 대학을 정시로 가는 추세지만, 당시에는 연세대, 고려대 등 많은 대학들이 수시로 학생들을 모집했었기에 수시를 버리는 순간 상위권 대학을 못갔던 때였으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저는 1학년 1학기 시험을 왕창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변명이라도 좀 해보자면, 시험이 저렇게까지 망한데는 물론 제가 공부를 안한 점도 있지만, 사실 디미고 내부 분위기도 한몫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디미고에는 전교권에서 놀던 친구들만 오기에, 다들 시험기간만 되면 미친듯이 공부했습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친구들이 학기 초에는 수시를 노리며 열심히 공부하니까요..
그렇다 보니 시험에서 한두개만 틀려도 등급이 엄청 떨어졌습니다.
가령, 한국사같은 경우엔 기말에서 딱 하나 틀리고 수행평가에서 2점정도 까이니까 바로 3등급이 뜨더라구요..
(물론 국어랑 과학은 할말이 없습니다... 제가 공부를 덜해서 6등급이나 나왔어요..)
사실 그래서 1학년 1학기때부터 내신을 아예 던지고 정시파이터라는 이름으로 달리는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저도 어찌 보면 그중 하나에 속해야 할 성적을 받았지만... 사실 전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프로그래밍이 재밌어서 즐겁게 했을 뿐이고, 내신 성적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몰랐기에 그냥 다음에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정도만 생각하고, 계속 프로그래밍 공부를 해나갔습니다.
어찌 보면 이렇게 생각 없이 살았던 것이 제 디미고 3년동안의 행복의 원천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생각을 비우고 눈앞에 있던 프로그래밍과 인공지능에만 열중했던 시간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서서히 저도 디미고에 적응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더 능숙하게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과도한 프로그래밍을 줄이고, 공부에도 어느 정도 치중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사실 1학년 1학기때는 갑자기 줄어든 취침시간이나 변화된 환경 등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기 일쑤였기에, 프로그래밍과 친구관계, 시험공부를 한번에 관리할 짬이 부족했던 셈이였죠.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기숙사 생활도 익숙해 지니... 그때부턴 프로그래밍과 내신 공부를 동시에 진행할 짬이 생겼습니다.
물론 그때도 수시로 대학을 가기 위해 시험공부를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 성격 자체가,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자는 주의이기에 시험기간엔 공부를 해야지! 하며 남들 하는만큼, 또는 그것보다 조금 더 많이 공부하며 시험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과학은 죽어도 1등급을 맞겠다는 생각으로 미친듯이 공부에 매달렸었습니다.
뭔가 이과가 과학을 못하면... 자존심 상하잖아요? 공부한 이유가 딱 그정도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ㅋㅋ
그 덕에, 과학을 중간/기말 모두 만점을 받고 과학 1등급을 받게 되었고, 국영수과 성적이 1학기때 4.5에서 2학기때는 2.75로 껑충 뛰게 되었습니다.
사실 국어만 더 잘봤으면 더 좋았겠지만, 1학기때부터 말아먹었던 국어실력이 2학기때라고 해서 변하지 않더라구요..
과학만큼 더 의미를 두고 공부하지 않았던 점이 더 컸겠지만요.
그러면서도 프로그래밍도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전 지금도 그렇지만, 프로그래밍 및 인공지능이 제 천직이라 생각하고 공부하다가 힘들거나 색다른 즐거움이 필요할 때 인강실에 들러 프로그래밍을 즐겼습니다.
가끔은 알고리즘 문제도 풀고, 인공지능 강의도 계속 듣고 블로그에 글도 쓰며 제 실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이렇게 쌓아나간 프로그래밍 실력을 원없이 뽐낼 수 있던 기회가 2학기 프로그래밍 시간에 찾아왔습니다.
프로그래밍 2학기 수행평가가 C언어로 제작하는 콘솔 게임 프로그래밍이었는데, 해당 작품을 토대로 반에서 상위 몇명만을 뽑아 본선에 나가서, 상까지 받을 수 있는 대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친구와 손잡고, C언어로 스타크래프트를 구현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철없고 열정만 넘쳤던 1학년이었기에 가능한 계획이었습니다 ㅋㅋ)
스타크래프트 스프라이트를 인터넷에서 찾아내고, 음성파일이나 이미지를 스타크래프트에서 뜯어낼 수 있는 툴을 사용하셔 C언어 콘솔에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이미지와 음악 등을 재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콘솔에 마우스 클릭을 통한 입력과 캐릭터 움직임까지 제작하고 나니 개발 기간이 1주밖에 남지 않더군요.
(사실 총 개발 가능 기간이 2주였습니다..)
게다가 각각의 유닛에 길찾기 알고리즘을 적용시켜 움직이게 시켜보니, 엄청나게 버벅이며 게임이 돌아갔기에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저와 제 친구의 알고리즘 실력으로는 효율적으로 캐릭터들을 움직이는 방식을 구현할 수가 없었기에, 그냥 스타크래프트 이미지를 씌운 유즈맵을 만들자! 로 계획이 변동되었고, 그렇게 개발된 것이 "Avoid Vulture"였습니다.
초기 게임은 무척 단순했습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벌처를 피해 날아남기만 하면 되는 게임이었습니다.
다만, 다른 친구들이 일반적인 픽셀 게임을 만들고 있을 때, 저희들이 만들던 게임은 정말 "게임"처럼 보이는 게임이었기에, 주변 친구들에게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은 개발 기간동안 단순 탄막 게임이었던 게임에 여러가지 보스도 추가하고, 유도탄이나 핵폭발 등 다양한 기믹을 추가해 나가며 정신없이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네, 정말 정신없이 프로그래밍 했었습니다. 일주일동안 야자시간과 방과후 남는 시간에 죄다 해당 게임 개발만 했을 정도니까요.
그렇게 완성된 저희의 게임은 저희들이 봐도 꽤 훌륭한 게임의 느낌이 났고, 다른 친구들도 재미있게 플레이해 주는 것이 아주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저희 게임은 반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며 본선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본선에서도 1등상인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프로그래밍 경험과 수상 경험은 제게 아주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친구들이 많은 디미고 내에서, 저와 친구의 노력과 열정으로 디미고 전체에서 최고의 게임을 개발한 팀이 되었으니까요.
또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즐거움을 더욱 증폭시키고 타오르는 열정만으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는 제가 프로그래밍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아주 큰 계기가 되었고, 이는 앞으로 2학년과 3학년때도 제가 인공지능을 공부할 수 있던 큰 동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콘솔 게임 프로그래밍 대회 대상과 썩 만족스러웠던 제 성적을 뒤로한 채, 제 1학년 시절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제가 1년간 디미고에서 배웠던 것들 중 가장 거대하고도 중요한 것은, 단연 스스로 공부하고 프로그래밍하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께서 가르친 대로 따라가기만 하고, 책에서 알려준 대로 따라만 하는 공부만을 했다면,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인공지능 공부를 하고, 직접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 경험들은 저에게 진정한 공부란 무엇이고, 그에 따른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도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디미고에서 3년간 살면서 얻었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인 공부의 즐거움을, 저는 1학년 이 시기에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적어도 공부만큼은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도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1학기때 6등급이라는, 처참한 등급을 받고도 다시 일어나 죽어라 공부해서 1등급으로 올렸던 이 경험은 단순히 "내신 성적이 올랐다"가 아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적을 급등시켰던 이 경험은, "나는 하면 되는 놈이다"라는 생각을 심어줌과 동시에, 앞으로 2학년과 3학년때의 제 공부에 더욱 자신감을 불어넣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1학년때 이야기도 엄청나게 많군요! 정말 많이도 쓴 것 같습니다.
2학년때와 3학년때의 기억보다 조금 흐릿한 기억들이 많았기에 가지치기를 많이 했어도 이정도나 나오는것을 보니, 그래도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상 > 디미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미고, 3년을 돌아보며 - Intro (4) | 2021.01.31 |
---|---|
디미고 진학 관련 이야기들 - 디미고 커트라인, 디미고 면접 등 (330) | 2019.11.04 |
디미고 입학설명회 후기 (0) | 2019.10.20 |
디미고 시험기간 - 최대 헬게이트, 고2 1학기 기말 (11) | 2019.06.29 |
디미고 일상? - 노트북 편 (8) | 2019.04.24 |